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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

[박여숙화랑] 박여숙화랑 개관 30주년 기념전 컬러풀코리아

박여숙화랑 개관 30주년 기념전 [컬러풀코리아]

박여숙화랑이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전을 개최합니다


김환기, 산월, 100 x 72.7cm, oil on canvas, 1950~1960. (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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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숙화랑 개관 30주년 기념전

COLORFUL KOREA 

Nov. 27th (Wed)–Dec. 11th (Wed). 2013  

작가와 함께하는 오프닝 파티 오후 6시

김종학 / 김환기 / 이대원 / 배병우 / 한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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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 BWN1A-022HC, 153 x 275cm, c-print mounted on plexiglas, 1996. (도 1) 


배병우, BWN2A-031HC, 184 x 223cm, c-print mounted on plexiglas, 2009. (도 2) 



한광석, 전통 염색, 2013. (도 3) 

한광석, 전통 염색, 2013. (도 4)


한광석, 전통 염색, 2013. (도 5)

이대원, 나무, 99.5 x 72.5cm, oil on canvas, 1986. (도 7)


이대원, 농원, 65.1 x 90.9cm, oil on canvas, 1992. (도 8)


김종학, 설악산풍경, 81 x 100cm, oil on canvas, 2001. (도 9)


김종학, 풍경, 62.5 x 74.5cm, oil on canvas, 2003. (도 10)


김종학, 설악산풍경, 162.5 x 129cm, oil on canvas, 2002. (도 11)


김종학, 설악의 가을, 162.2 x 130.3cm, oil on canvas, 1988. (도 12)


벌써 가을이 성큼 지나갔습니다. 전시작품을 결정하고 팜플렛 제작을 마무리 하고나니, 그 화려했던 가을색이 변했습니다. 낙엽은 쌓이고 누런 황금벌판은 텅 빈 들녘으로 황량해졌습니다.

본래 가을에 보는 한국의 색, 한국의 색채미 ‘칼라풀 코리아’를 꾸미려 했습니다. 우리의 푸른 하늘, 청명한 공기, 화려한 단풍 아래 그 가을과 함께 하려다 조금 게을러졌습니다. 눈이 내릴 듯한 회색하늘이 벌써 지난 가을을 떠오르게 합니다.

호시절을 놓쳤지만, 칼라풀한 한국의 색채예술을 감상하는 전람회를 꾸며보았습니다. 배병우선생님의 창덕궁 사계절을 담은 사진작품, 한광석선생님의 청색 쪽물염색과 다채로운 가을색의 천연염색 작품, 그리고 한국현대회화사의 거장이면서 색채화가로 손꼽히는 김환기, 이대원, 김종학 세 분 선생님의 회화작품을 한 공간에 모아보았습니다.

이들 다섯 분의 작품들을 우리 갤러리 공간에 전시하고 나니, 한국색의 현란이 가득합니다. 한국의 자연색, 전통색, 현대회화의 색채미가 이토록 하나같이 아름답게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황홀함이 가득 찬 전시장은 우리색의 긍지를 자랑합니다.

박여숙화랑이 문을 연지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그 조촐한 기념으로, 명지대학교 이태호 교수와 공동으로 기획하여 마련한 전시입니다. 지난 가을의 화려했던 색들을 다시 추억하는 시간과 더불어, 우리나라 색채예술의 진수를 만끽하셔도 좋을 성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1월  박여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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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연색, 전통색, 

그리고 현대미술의 색채미


이 태 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문화예술대학원장)


시작하며

한국의 가을은 청명하다. 올해도 여느 때처럼 단풍으로 산하는 온통 색잔치였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어울린 흰 구름과 황금벌판, 단풍과 과실의 빨강, 노랑, 갈색, 초록의 원색에서 중간색까지 온 산하가 화려했다. 한국의 자연색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계절의 변화와도 함께 한다. 색잔치 후 늦가을 잿빛의 멜랑꼴리한 색조와 찬 겨울의 푸근한 흰 눈 , 봄의 찬연하게 생동하는 분홍색과 연두색 파스텔톤, 여름의 짙고 왕성한 녹음, 금수강산. 이 땅에 살아온 한국인은 그래서 본디부터 칼라풀하다. 근래 지구 온난화에 따라 우리나라가 아열대 지역으로 바뀌었다 해도 계절색은 여전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색을 백색이나 오방색이라 하지만, 그것으로는 온통 색잔치인 한국의 색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 강산은 땅과 바다와 하늘의 다채로운 색깔변화 속에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들이 어울림을 이룬다. 대지에 자란 풀과 나무와 꽃들이 연출하는 사계절 역시 색의 아름다움으로 얼룩진다. 온갖 색들은 선명하여, 거대한 색채의 대축제라 이를 만하다. 또한 인간은 자연에 따라 인공색을 발달시키고,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이 개성적인 색채미를 즐긴다. 이들 가운데 인간이 만든 나쁜 때깔부터 오염까지도 포용하여 조화시키는 게 자연색의 묘미이다. 우리는 자연색으로부터 천혜의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이러한 지역풍토에서 우리 전통회화는 빼어난 색채미를 드러냈다. 고구려고분벽화부터 조선시대 궁중화나 민화까지, 나아가 복식이나 음식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화려한 색채전통을 유지해왔다. 특히 한국의 강산과 어울려 난색 계열과 푸른색, 그리고 녹색과 적색의 보색대비를 즐겼다. 이 점이 한국 색채미의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나는 2008년 11월 오사카 한국문화원에서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 ‘고구려의 색, 한국의 색’ 기획전시를 마련한 적이 있다. 고구려고분벽화 사진과 한광석의 염색작품을 곁들여 꾸렸던 전시로, 현지에서 상당한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번 기획은 그 연장으로 전통색과  현대회화를 조인트하려 시도하였다. 한국의 자연은 배병우의 창덕궁 사계 사진작품을, 전통색은 한광석의 천연염색 작품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현대회화에서는 김환기, 이대원, 김종학 세 화가를 선정했다. 이들은 서구의 인상주의나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개성화, 한국화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자연이나 전통을 모태로 칼라풀한 색채미를 구현한 작가들이다.


배병우, 영화당에서 내려다본 부용지 일원의 설경, 2003. (참고도판 1)  


1. 한국의 자연색 : 배병우의 창덕궁 사진


배병우는 ‘소나무 작가’라 이를 만큼,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하다. 2010년에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진집을 훑어보면, ‘20대 청춘 시절에 마라도 바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것이 나를 유명하게 해준 소나무로 이어졌다’고 한다. 경주 일대를 중심으로 찍은 소나무나 솔밭의 흑백작품은 그야말로 배병우 사진예술의 백미이다. 제주도 오름과 바다, 여수와 부산의 바다와 섬 등 아름다운 한국을 담은 작품은 『청산에 살어리랐다』에 실려 있다. 또 종묘, 창덕궁, 알람브라 궁전, 타이티 등 국내외 명소까지 기획 섭렵하며 세계가 인정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배병우는 한국의 자연색을 창덕궁에서 찾았다. 인공색과 어울린 우리 산하 고유의 색깔을 창덕궁에서 잘도 포착한 것 같다. 1991년부터 2009년까지 근 20년간 꾸준히 창덕궁 사계를 찍어왔고, 2010년에 창덕궁 화집을 발간했다. 


1991년 찍은 <주합루에서 내려다본 부용지 일원의 가을풍광>에는 창덕궁의 주합루에서 굽어보는 부용지와 부용정에 가을단풍이 어우러져 있다.(도 1) 그 장면을 옆으로 길게 파노라마로 포착한 작품이다. 부용지의 깊은 암녹(暗綠) 물색에 녹색과 붉은색 계열이 덩어리져 조화롭다. 빨강과 초록색은 한국색의 근원이다. 빨강과 초록은 보색대비로, 보통의 화가내지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서로 기피하는 색배열이다. 그러나 우리 자연에서는 굉장히 익숙한 색배합이다. 이는 고구려고분벽화부터 조선시대 단청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나타나는 보색대비다. 가을색은 또 빨강과 더불어 노랑, 갈색이 어우러진 난색계열이 조화를 이룬다. 가을의 파란 하늘이 익혀낸 색깔임을 잘 보여준다.


2003년의 <영화당에서 내려다본 부용지 일원의 설경>은 흰 눈 쌓인 아름다운 풍광작품이다. 복잡한 구성이면서도 들린 문 밖으로 굽어보는 연못의 설경이 푸근하고 고요하다.(참고도판 1)  같은 해 봄 사진 <승화루 일원의 담장과 능수 벚나무>는 수양버들에 접붙여 늘어진 가지의 벚나무를 찍은 것이다.(참고도판 2) 버드나무형 벚나무와 산수유가 피고, 그 뒤로 담장이 둘러 있다. 이 작품은 앞서 본 설경사진과 함께 1991년 가을 사진의 진지함이나 욕심의 무게를 덜은 듯하다. 가벼운 미풍의 흰 꽃가지들이 그러하다. 배병우는 <부용정 서쪽에서 본 부용지와 영화당 일원>을 한 화면에 잡아내기도 했다. 2003년 여름에 찍은 것으로, 부용지에 비친 영화당이 약간 어려 있다. 군왕이 지내는 궁궐이라는 엄격한 이미지를 대칭형으로 표현해내기보다는, 사선구도로 촬영한 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전통산수화 구도로 보면 편파구도식인즉, 소나무 사진들에서도 흔히 발견되듯이 배병우가 스스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를 공부하고 난 결과인 것 같다.


언뜻 궁궐 같지 않은 평범한 자연과 가옥이 어울린 장소를 아주 세련된 구성으로 잡아낸 눈썰미가 배병우답다. ‘극단적인 두드러짐 없이 자연은 자연 그대로, 인공은 인공 그대로를 두고 조화를 이루는 특징에 주목하여’ 포착한 점이 창덕궁 후원 사진작업의 백미이다. 자연색의 위대함은 인간이 만든 모든 인공색을 어떻게든 포용해준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창덕궁은 경복궁처럼 남북을 축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해 왕실의 권위를 구사한 궁전이 아니라, 자연과 어울려 조화로운 구성이 자랑거리이다. 별궁의 기능을 함께한 공간구조로 설명된다. 북한산을 보면서 산비탈과 어우러진 공간 속에 인간이 궁궐을 조성하여 살아가던 자연을 배병우가 한국적 색으로 접근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부용지를 조성한 규장각 주합루는 조선후기 정조가 성리학풍을 다잡아 세우기 위해 건립한 학당으로, 정조와 문인사대부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그런데 자연환경은 칼라풀한 사계가 선연하다. 규장각이 배출한 성리학자들이 절제미나 검박함보다 화려한 자연색에 심취하여 풍류를 즐겼을 터이다. 정조시절의 조선적 학문과 예술이 이런 자연 풍류와 동화되어 이루어졌음을 수긍케 한다.


배병우의 창덕궁 사진작업은 조선후기 다양성과 조선풍, 그리고 현실을 존중하며 이룬 화려한 생활문화나 회화사조가 그 자연색 분위기에서 나왔음을 새삼 확인케 해준다. 이는 창덕궁 단청사진들을 통해 한국의 전통색을 표현한 점에서도 그런 성향을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2009년에 찍은 <임천의 승경 따라 지은 육모정자 존덕정 천장구조>는 이전의 작품이 약간씩 방향을 사선으로 틀어 원근을 담았던데 비해 완전히 대칭구도로 잡았다.(도 2) 육각형 건물의 모주림 천정을 그 구조에 맞게 찍은 것이다. 인간이 색칠한 단청이지만, 초록색을 중심으로 붉은색이 얹힌 보색대비는 앞서 언급했듯이, 가을 단풍을 닮은 한국색의 기본배합이다.



2. 한국의 전통색 : 고구려고분벽화에서 한광석의 천연염색까지


전체적으로 한국의 자연색은 봄과 가을을 중심으로 울긋불긋하다. 그 아름다움의 집적이 한국미술사의 전통색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보통 ‘한국의 색’이라고 하면 백의민족이나 청색, 그리고 오방색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의 알록달록한 자연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청색이나 오방색이 좀 가까운 편이지만, 이는 도가적인 음양오행설에서 유추된 것으로, 상징적인 의례 정도에 활용된 것 같다. 


오방색은 오방정색과 오방간색으로 나뉜다. 적색(赤色), 청색(靑色), 황색(黃色), 백색(白色), 흑색(黑色)이 오방정색이다. 동쪽은 푸른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붉은색, 북쪽은 검정색이다. 오방간색은 파란 옥색(碧), 녹색(綠), 흑갈색(騮), 자색(紫), 홍색(紅)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동아시아에서는 이렇게 열 개의 색을 기본으로 잡았다. 동양사상은 여기에 오음(五音), 오미(五味), 오장(五臟), 오상(五常) 등을 연결하여 오방의 의미를 부여했고, 이로써 모든 세상의 것들을 풀려했다. 그래서 한국의 색하면 오방색으로 시작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오방색으로 우리 회화가 설명되지 못하는 점은, 처음 오행의 개념으로 사신도와 황룡을 배치한 고구려고분벽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청룡ㆍ백호ㆍ주작ㆍ현무ㆍ황룡으로 오행을 맞춘 강서대묘나 대묘와 유사한 사신도의 강서중묘를 살펴보면, 오방을 오방색으로 맞추지 않았음이 금세 확인된다. 현무의 검은 색도, 청룡에 해당하는 푸른색도 없다. 모두 녹색과 붉은색을 기본으로 그렸다.(참고도판 3) 그나마 주작과 백호는 방위색을 갖춘 편이나, 주작도는 주색에 노란색과 흰색을, 백호도는 흰색에 붉은색을 곁들였다. 이는 다음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며, 방위색을 맞춘 경우는 조선시대 궁궐문화의 의례나 군기에서 확인되는 정도이다.



1) 우리의 색채 예술의 근원, 고구려고분벽화


고구려다운 웅혼한 형상미와 더불어, 고분벽화의 아름다움은 바로 색채미에 있다. 나는 2006년 4월 19일부터 5월 2일까지 두 주일간 남북 공동으로 시행한 평양지역 고구려 벽화고분의 보존실태 조사에 참여하였다. 안악3호분(安岳3號墳), 덕흥리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墳), 수산리벽화고분(修山里壁畵古墳), 호남리사신총(湖南里四神塚), 진파리4호분(眞坡里4號墳), 진파리1호분(眞坡里1號墳), 강서대묘(江西大墓), 강서중묘(江西中墓) 등 8기의 고분을 실견하면서 받은 가장 큰 감명은 벽화의 선명한 색채였다. 거짓을 살짝 보태면 내가 고분에 들어가기 직전 화가가 붓을 떼고 나간 듯, 물기 머금은 채색들이 생생했다.


이 조사에서 벽화의 안료 분석도 시도되었다. 그리고 색채를 잘 보존시킨 회면이나 석면의 바탕과 양질의 광물성 물감을 확인하였다. 가장 눈에 띄는 색은 붉은색이었다. 빨간색은 귀족층인 무덤주인과 관련한 권위의 상징이겠고, 무덤 안을 지키는 벽사의 의미로 그리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붉은색 계열로 적갈색은 석간주(hematite)이고, 주색은 진사(cinnabar)나 황화수은(HgS)의 vemillion으로 점쳐졌다. 황색은 황토(Goethite)이고, 녹색은 녹청인 공작석(malachite)이나 녹토(green earth)로 체크되었다. 석간주, 황토, 녹토는 철분안료이고 진사나 녹청은 동안료이다. 이들 모두 정제시켜 개발한 인공안료이다.(참고도판 4, 5, 6) 석회바탕을 제외하고 사용한 백색의 대부분은 고급의 연백(Lead white)이었다. 특히 이 연백의 사용은 당시 안료의 발달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흑색은 윤기 나는 먹이었다.  간색으로는 석간주에 연백을 섞은 살색표현, 진사에 연백을 섞은 분홍색, 녹토와 황토와 연백을 섞은 연두색 등과 같은 중간색도 화사하면서 투명한 색감을 표현했다. 황갈색이나 녹갈색, 흑갈색류의 갈색조도 다채로운 채도와 명도를 구사했다. 청색(blue)은 뚜렷한 사용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초기와 중기에는 대체로 묘주인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공사의 생활상, 행렬도, 사냥, 씨름, 무악, 불교축제인 칠보행사 등 인물풍속도가 유행하였다. 이들은 고구려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4~5세기 고분벽화의 묘주인 초상화와 묘풍속도에서는 당시 생활상 가운데 복식표현을 통해 고구려인이 즐긴 컬러감각을 엿볼 수 있다. 붉은 적갈색 도포, 띠무늬의 검은 비단저고리에 주름진 색동치마, 붉은색 의상에 흰 행주치마, 물방울무늬 흰색이나 노란색의 바지저고리가 그러하다. 상하의를 동일색으로 하지 않고 여러 색을 조화롭게 입은 컴비네이션 패션은 현대적 감각마저 물씬들 정도이다.(참고도판 7)


후기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四神圖)를 주제로 한 벽화고분만이 조성되었다. 6~7세기 사신도 벽화는 앞 시기와는 또 다른 화려한 색채감각을 보여준다. 섬세한 현상묘사의 웅혼한 조형미와 함께 당대 동아시아미술사를 대표할 만한 색채미를 뽐낸다. 어찌 보면 고구려 후기의 형상표현과 색채가 우리의 통상적인 미학적 상식을 벗어나 있기도 하다. 적색과 녹색의 보색대비가 어울리기 힘들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흔히 ‘섬세하다’라거나 ‘화려하다’라는 표현은 힘차다는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고구려후기 벽화의 사신도는 섬세하고 치밀한 선묘로 힘차고 유연한 형태의 리듬감을 구사했다. 천정화로 등장한 황룡, 봉황, 기린, 비천이나 천인 같은 상상의 도상들도 마찬가지이다.(참고도판 8) 그리고 화려한 채색을 덧씌웠다. 특히 보색대비의 빨강과 초록, 빨강과 노랑과 초록과 갈색을 병치한 입체감은 형상의 기운을 넘치게 한다.


고구려고분벽화의 색채미는 고구려 색으로 그치지 않고 한국의 색채정서를 그대로 대변한다. 한국미술사에서 최고의 섬려한 색채미를 자랑하는 고려불화가 발달했고, 그 전통은 조선불화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궁중장식화나 기록화, 초상화 같은 화원들의 채색화, 조선후기 문인화가가 그린 화사한 화조영모화, 민화나 무속화, 궁궐이나 사원건축 단청 등의 녹색과 적색, 주색, 황색, 갈색 등 색상은 고구려 사람들이 즐긴 화사한 원색조가 그대로 유지된 편이다. 조선시대 채색화에는 석청(CuCo3)이나 화감청(Co)같은 블루계열의 안료를 비롯해서 두어 가지가 추가되었을 정도이다.  보색대비를 이루는 적색과 녹색조의 배합도 여전하고, 적ㆍ황ㆍ녹색의 병치는 옛 선인들의 명랑한 색채감각이랄 수 있다. 이들 한국회화사의 전통색들은 한국의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산천의 변화와도 밀접하다. 


고려나 조선시대 상류사회로 올라가면, 자연색에 어울리게 사람들은 칼라풀한 옷들을 입었다. 사대부 관료의 관복부터 귀부인들의 의상, 색동저고리에서 보자기까지 생활색의 화려함을 추구했다. 또 조선후기 김치의 붉은색이 우리 음식의 흰색, 노란색, 연록색 등 다채로운 색감을 주도했다. 이런 점만 보아서도 우리는 백의민족 같지 않다. 그리고 한국의 색은 흥과 신명과도 어우러진다. 무당이 입는 의상을 보면, 초록, 빨강, 노랑, 흰색조각들로 구성된다. 무용수나 악대의 의상도 비슷하다.


그린과 레드는 내년 패션의 중심색채라고 한다. ‘경쾌하거나 화사하거나’라는 문구로 내년 봄여름 패션경향이 제시되었다. 내년이면 드디어 한국의 색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이번 박여숙화랑의 기획전은 내년 봄을 미리 보는 ‘칼라풀 코리아’가 된 셈이다. 이러한 우리색 취향은 또 한광석의 염색에서 찾을 수 있듯이, 천연염색의 전통과도 상통한다.



2) 전통색을 재현한 한광석의 천연염색


우리의 전통적인 색채감각은 염장 한광석의 작품에 고스란하다. 1993년 일이다. 전남대 교수시절 벌교에서 10년 동안 전통염색에 빠진 사람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한광석씨가 색을 쫙 내고 있었다. 그는 이 땅에서 거의 사라진 쪽 농사를 지어 물들인 쪽빛을 내밀었다. 전통색을 재현하여 모시나 삼베, 무명에 물들인 한광석의 작업들을 학고재에 들고 가 기획전을 마련했다.  그때 조선색을 다시 찾았다며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쪽물은 옅은 옥색부터 짙은 남색까지 낸다. 그때 개인적으로 감동한 것은 감색(紺色)이었다. 짙은 남색으로 염색한 고려사경의 감지와 동일한 색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려종이에 물들인 감지의 색은 신비의 색이었다. 그런데 한광석이 이를 재현했으니 감명이 클 수밖에 없었다. 10년 동안 쪽물 들인 천에 반복해서 물을 들이다보니 그 감색이 나왔다는 것이다. 팔리지 않는 동일 천을 매년 다시 꺼내 염색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슴 저미게 했던 일화이다. 허나 고려사경 감지의 신비로움은 계속 남는다. 한광석이 쪽물 들인 것은 삼베여서 물을 견딜 수 있었는데 비해 종이는 조직이 다 풀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고려 닥종이는 섬유조직이 풀어지지도 않고 물든걸 보면, 정말 질긴 모양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색톤의 한광석 쪽물염색을 보면, 그 무궁한 변화가 환상이다. 물들이는 계절인 우리 가을 하늘과 닮아 있다. 쪽물염색은 한국의 자연과 화합하는 색깔의 면목이라 할 만하다.(참고도판 9, 10)


고려나 조선시대 관복은 짙은 청색이나 녹청색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청자가 그 미묘한 녹청색 색감을 자랑했고, 조선시대에는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가 무던히도 유행했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색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청색계열이다. 청색은 오방색 중 동쪽을 상징한다. 중국을 중심으로 우리는 동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청색 나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중국의 황제가 노란색을 입었기에 우리나라의 왕들은 노란 옷을 기피 했을 정도였다. 이런 의례에서 오행의 방향색을 지킨 것 같다. 


한국색의 하나가 왜 청색인지는 간송미술관 소장의 《혜원전신첩》에 꾸며진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30점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이 풍속화첩에 등장하는 여자들 패션을 가지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여인들의 70% 이상이 쪽물들인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차림이다.  사대부가 부인들뿐만 아니라 주막의 주모, 기생들까지도 쪽물들인 남색 치마를 입었다. 푸른색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19세기 세계 패션을 선도하던 파리지엔느들이 블루스커트에 화이트블라우스를 입고 다녔다고 뽐낸다. 이를 비교해도 한양여자들이 파리여자들 못지않게 색감에 뛰어났다고 볼 수 있겠다. 청백색 의상에 녹색, 보라색, 빨간색 띠나 신발, 여러 장식들을 시각적 악센트로 활용하기도 했다. 청백의 한색(寒色)에 은근한 화사함을 조화시킨 맵시다. 개성이 강한 여자들은 남치마에 연록색이나 분홍빛 저고리를 받쳐 입기도 했다. 이런 전통의상 역시 위아래 색을 다르게 입는 패션이다. 고구려고분벽화부터 나타난 남녀 인물상의 기본형 복색인즉, 장구한 세월동안 변치 않고 쌓인 컴비네이션 패션의 미의식을 엿보게 한다.


쪽은 1년 농사이다. 벼 베고 난 뒤, 곧 농사일을 끝낸 가을 일년생인 쪽풀을 베어다가 발효시켜서 색을 피운다. 한광석은 전남 벌교에서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농사를 지어가며 매년 쪽물을 올려 물을 들여온 염장이다. 단순한 색내기 작업이 아니라 그 농토와 호흡하며 색오름을 지켜왔다. 농사꾼과 염장 일을 분리하지 않는 생활 속에서 그 전통을 잇는다는 점이 한광석의 매력이다. 작업량이 남다르고, 높이 살만하다. 조선시대 염색 전통을 재현한 한광석의 천연염색은 쪽물에 그치지 않는다. 이꽃이라고 하는 홍화를 우려낸 분홍이나 붉은색, 황백이나 황련을 우려낸 짓노란색, 지초의 연보라색, 소목의 짙은 적색 등을 성공적으로 찾아내었다. 이들 역시 가을에 가을을 물들인 결과이다. 그만큼 우리 가을하늘 아래 다채로운 고운 빛깔을 닮아 있다.(도 3, 4, 5)


염장 한광석의 천연염색을 전시장에 함께한 것은 그저 전통색을 보여주기 위함 만이 아니다. 한광석이 쪽물들인 다양한 블루나 황색, 홍색, 적색, 자색을 들인 모시, 삼베, 비단, 무명 등은 분명 한광석을 우리시대의 색채작가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런 한광석의 염색 천들은 의상에 활용하기 위한 일차 소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염색한 상태대로 당당한 색채작품이라 생각된다.



3. 한국의 현대 색채화가 : 김환기, 이대원, 김종학 


고구려고분벽화부터 고려불화, 그리고 조선시대 불화나 궁중채색화 등으로 계승되면서 한국의 색이 구현되었다. 녹색과 적색의 보색대비, 청색계열 블루톤의 다채로운 변화, 노랑과 붉은 색조의 화사함 등 우리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현란하고 명랑한 색채감흥을 보여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채색화가 외면되었고, 대신에 일본화 채색화풍의 영향이 깊게 뿌리를 내렸다. 일본의 채색화는 전통적으로 호분을 사용하여 흰색 바탕칠을 기본으로 삼는다. 습한 지역의 색채답게 전체적으로 채도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화의 영향을 받다보니 우리의 전통적 색상의 선명한 색채감각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 이당 김은호에서 천경자까지 채색화 방식이 그러하다. 불화나 민화풍을 따른 1980년대 박생광 회화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전통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 오히려 인상주의부터 추상주의까지, 서양화가들이 전통적 색채미를 계승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지호나 도상봉 등 인상주의를 배운 화가들은 우리 자연환경과 회화와의 관계를 새로이 모색하게 되면서, 한국적인 인상파 화풍을 정착시켰다. 모더니즘을 수용한 작가들은 서양화 안료를 전통색채나 전통미감과 매치시키려 노력한 작가가 상당히 출현했다. 서양물감의 다채로운 종류와 질 좋은 색감으로 한국인의 정서나 자연을 적절히 표현하게 된 것이다. 서양물감으로 전통적인 색채미의 현대화를 이룬 모던화가는 김환기, 이대원, 김종학을 손꼽을 수 있겠다. 세 화가는 지금 미술시장에서 상위 그룹에 속한다. 그 이유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자극하는 대중성을 지니기 때문일 게다.



1) 김환기(1913~1974)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으뜸 색채화가는 수화 김환기(1913~1974)이다. 서구 모더니즘을 배운 김환기의 회화는 순수한 색면 배합의 추상화풍에서 시작되었기에 참신한 색채감각의 화면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은 산과 달을 담은 유화 <산월(山月)>이다.(도 6) 그림의 주제와 우둘투둘한 질감의 기법으로 보아 1950년대 말 ~ 1960년대 초쯤의 그림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처럼 구름표현이 없이 간결한 구성의 산과 달 그림은 많지 않다. <산월>과 근사한 구성은 1959년작 유화 <월광>(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참고도판 11) 달에 띠가 있고, 그 아래 각진 산을 높게 배치된 상하로 긴 그림이다. <산월>과 같은 붓질의 화면처리가 눈에 띈다. 


물감을 덧바른 푸른 화면의 붓질이 고르지 않다. 밝은 청회색조 화면은 전체가 하늘이다. 화면의 중앙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캔버스 상단에 닿아 있는 달은 짙푸르다. 달 표현의 물감은 하늘보다 두텁게 떠있다. 김환기는 백자달항아리의 이미지와 닮은 이런 달을 사랑했다. ‘달처럼 둥근 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평생을 그려도 달을 다 못 그릴 것 같다’고 했을 정도이다. 또한 어렸을 적 신안 기좌섬의 검푸른 바다와 하늘에 떴던, 그 고향 달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을 법하다. 사선으로 살짝 비킨 산은 둥그스레한 봉우리 정상부분만 보인다. 주황색 밑바탕을 짙은 갈색으로 덮었고, 민둥산의 가장자리를 살린 붓터치는 섬세하다. 마치 지구의 일부 같아 보이기도 한다. 


김환기는 196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운월>(1963년), 초기 뉴욕시절의 <새벽별>(1964년), <야상곡>(1961~64년) 등 1960년대 들어 부쩍 달과 함께 두텁게 바른 질감의 산과 바다, 구름을 단순화하거나 추상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짙푸른 바탕색에 검은 곡선을 반복하며 그린 구성들이 복잡했다. 이런 경향에서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정리된 단순한 구도와 미묘한 푸른 빛깔’로 아무 치레거리 없이 산과 달을 담은 유화 걸작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달이 등장하는 김환기의 그림에는 밤의 산과 내, 하늘과 구름, 학이나 새, 사슴, 나무, 꽃, 여인 등이 억지스럽지 않게 포용된 예도 있다. 특히 김환기의 달 그림은 화폭이 간결하게 정리될수록 감명을 준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선정한 <산월>은 <월광> 못지않게 가장 간결한 화흥의 김환기 득의작이다. 단순한 구성과 블루색조에 화면 가득 덩실한 푸른 달은 찬 하늘의 겨울답다.


이처럼 수화 김환기의 칼라는 블루다. 훤한 보름달도 푸르게 그린, 청색 수화(樹話). 푸른 색감을 주조로 한 김환기의 색은 ‘미묘’하면서도 신비롭다. 도대체 무슨 물감을 썼길래 하는 궁금증이 일 정도로 깊은 맛을 낸다. 그처럼 미묘하고 신비로운 김환기의 블루는 가을 하늘색의 청명한 블루가 아니다. 바다색이라 보기에도 맑은 동해바다의 블루가 아니다. 좀 진하고 탁하다. 김환기는 한반도의 서남쪽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 출신이다.  신안 앞바다는 늘 밀물과 썰물이 교체되는 갯벌이라 투명하거나 맑지 않다. 파란 물색을 볼 수 있는 날이 극히 적다. 그 탁한 바다색과 조우한 하늘이 김환기의 청색조 그림에 투영된 듯하다. 김환기의 블루는 그가 늘상 고향을 품고 살았듯이 그리움의 색이다. 


김환기는 말기에 오면서 단순한 색면의 순수 색채 추상(抽象)의 세계로 몰입했다. 특히 뉴욕시기에 그러하였다. 1960년대 후반기는 가장 다채로운 색을 사용했던 색채화가로 전성기였다. 유화 외에도 수채화와 과슈, 그리고 당시에 막 개발되었던 아크릴릭 물감까지도 써보았다. 심지어 색종이를 오리거나 찢어서 작업해보기도 했다. 이러한 1960년대 후반기 이른바 ‘十자 구도’ 추상작업의 다채로운 색감과 1970년대 전반 점화(點畵)의 남색이나 회색조는 1950~60년대의 구상작업과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민족적이면서 세계적인 색채화가로 자랑할 만큼, 거장다운 면모를 보인다.


점화 연작들은 아교로 밑칠한 켄버스보다 주로 순면 코튼(Cotton) 위에 직접 채색을 올린 것이 많다.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이 사라지고 푸른 남색과 회색조로 압축되면서 주로 그런 방식을 썼다. 안료를 소나무에서 채취한 기름 테레빈(turpentine oil) 만으로 묽게 녹인 뒤, 순면에 스미는 맛을 예민하게 살리면서 선을 긋고 점을 찍었다. 이때 김환기가 엷게 즐겨 쓴 프러시안(Prussian)과 울트라마린(Ultramarine)계의 청색이나 블루 블랙(Blue Black)을 비롯해서 초록색기가 나는 청색 프탈로시아닌(Phthalocyanine)이나 청자 유색의 원료이기도 한 망간(Manganese)의 섬세한 회청색을 선호했음이 눈에 띈다.  이들은 짙푸른 쪽색에 근사하고, 아이보리 블랙(Ivory Black)으로 풀어낸 회색은 먹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마치 모시나 삼베 같은 천연 재료에 쪽물이나 먹으로 염색한 것처럼, 회색과 청색의 점화를 그려낸 것이다. 


1974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김환기의 다채로운 색깔이나 블루는 그처럼 청회색조로 바뀌었다. 회색의 점화 가운데는 점들 사이에 몇몇 선들을 드러내고, 매화가지를 연상시키는 듯한 하얀 선을 남긴 작품도 눈에 띈다.(참고도판 12) 마치 늦가을 비가 내리는 풍경 같다. 세상을 떠나기 전 뉴욕 허드슨 강가를 산책하는 노신사의 모습 사진처럼, 김환기의 말년 작에는 영락없는 겨울 남자의 우수가 서려 있다.



2) 이대원(1921~2005)


이대원 역시 한국근현대회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색채화가이다. 이대원은 1930년대 그림을 그리던 초기부터 야수파적인 정물화를 그렸다. 눈에 든 형상을 그대로 그리기보다 변형을 시도했다. ‘서양화법의 기본이라 할 입체감이나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체질에 안 맞는다며 싫다’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그런 탓에 아마추어 냄새가 물씬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1960년대 들어 새로운 변모가 일었다. 이대원은 대숲과 난초를 그리는 작업을 시도했다. 서예도 배웠고 동양화의 모필 맛을 살려 그림을 그렸다. 이와 함께 점을 찍고 장식적인 선을 쓴 반닫이와 도자기 같은 정물화, 산 숲이나 옛 담장과 소나무 같은 소재의 풍경그림을 그렸다. 청전 이상범은 곁에서 이러한 이대원의 그림을 보고, ‘서양물감으로 그린 동양화’라고 상찬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대원은 동양화적인 구성과 서예의 필획으로, 점을 찍어가며 그렸다. 인상파식의 선묘화와 점묘화를 병행하였고, 야수파풍이나 표현주의도 절충했다. 그 사이에 한국적 아름다움을 충분히 소화한 것 같다. 그럴 만큼 이대원은 조선시대 자수나 보자기, 민화, 목기나 농기구 같은 유물을 수집하며, 전통적인 조선의 색과 형태를 익혔다.


1970년대를 거쳐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고향 파주에 일경농원을 일구어 놓고 여기서 이대원 양식을 구축하였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 이대원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리듬의 필법과 화려한 색감에 심취했다. 집중적으로 농원과 그 주변의 풍광을 대상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러면서 세상보다는 자연의 원리나 질서에 눈을 떴다. 겨울을 지나 봄여름가을의 변화기운이 생기 넘치도록, 즐거이 작업을 쌓았다.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평생 그리면서 나뭇가지에 움트는 생명력에 가장 관심을 쏟았던 듯하다. 이런 점에서 이대원은 봄 남자다. 봄날 그림이 역동적이다.


노란색 바탕의 사과꽃 피는 봄 풍경의 생동감에 대하여 일본이나 프랑스 등 외국의 평론가들은 ‘이 세계와 운명의 뿌리인 기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재주와 범우주적인 정서’로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친구인 김원룡은 “하여튼 이대원화(李大源畵)의 점들은 우리 산수의 즐거움의 절묘한 표현이기도 하고 이대원 자신의 화창한 인생의 음률이기도 하다. 그러한 산수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인생의 행복감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땅에서 솟아 하늘로 올라간다. 작가의 몸은 늙어 가는데 그림은 점점 더 젊어지고 동화(童化)한다. 이대원의 그림 앞에서 인생이 즐거워지는 것은 그런 때문일 것이다”라며 이대원을 어린애 같은 봄 남자라고 표현했다. 


봄의 원기 넘치는 사과 꽃그림에 이어 여름에는 초록과 약간 보라끼가 있는 파란색을 마구 칠했다. 사과 익는 가을 그림에는 노란 바탕에 붉은 열매, 보라 계열의 블루를 혼용했다. 농원의 겨울풍경들은 그 다채로운 색 위를 하얀 눈점으로 덮어 그렸다. 초록색과 푸른색의 대비효과는 이대원의 말년작품을 해석하는 단서처럼 보인다. 1960년대부터 점묘를 써서 동양화적 유화를 그리다가 1980년대 완연한 색채화가로 변모하면서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내었다. 자신의 숨결에 맞춰 계절색을 붓의 탄력으로 쏟아냈다.(참고도판 13, 14)


1986년작 <나무>는 이대원이 봄의 화가임을 적절히 보여준다.  화면 전체는 남보라끼가 뒤엉킨 블루톤에, 누런색과 붉은색에는 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기운이 가득하다.(도 7)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가는 붓질을 반복하여, 너울대는 봄의 생명감을 표출했다. 아직은 을씨년스러운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시기, 나목에는 움이 트기 직전의 가지들이 꺾여가며 힘 있게 뻗쳐 있다. 배경의 푸른 하늘은 청명하고, 언덕의 마른 풀섶은 아우성치는 듯 일어선다. 캔버스에 팍팍 쓸어낸 선묘는 1980년대 중반 60대 이대원 스타일이 막 완성된 시점의 에너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나목에 뻗은 잔가지의 리듬은 흔히 이대원이 즐겼던 재즈나 사물놀이 같은 일정하지 않은 부정형의 빠른 연주에 비유되기도 한다. 형상을 그리고 또 그 형상을 선으로 지워가는 모습은 인상주의 화풍을 기본으로 하면서 표현주의 경향이라 할 만하다.


1992년작 <농원>은 흰 들꽃이 핀 누런 풀밭에 자란 붉은 봉숭아꽃그림이다.(도 8) 화면의 오른편에 배치한 붉은 꽃과 꽃망울, 꽃대에 달린 버들잎 닮은 잎사귀로 보아 그러하다. 여름 봉숭아꽃의 붉은 색은 연녹색이나 초록색과 보색대비를 이룬다. 이는 앞서 설명한 고구려 고분벽화부터 나타나는 우리 민족색의 어울림이기도 하여 주목된다. 작업과 연륜이 쌓이면서 대자연의 질서를 공감하고, 자연스레 전통의 색채미와 억지스럽지 않게 만난 셈이다. 



3) 김종학(1937~)


김종학은 여름화가이다. 짙은 녹음이 뿜어내는 숲의 여름에너지를 가장 성공적으로 캔버스에 담아왔기 때문이다. 태양이 장렬하고 울긋불긋한 꽃들이 가득 찬 화면에 거미, 나비, 벌레, 곤충, 개구리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조차 한여름의 기운을 합창한다. 그런 탓에 김종학 회화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은 초록 바탕에 붉은 꽃들을 중심으로 여러 색이 찬연한 여름 풍경화이다. 


녹음이 짙을수록 김종학의 기가 왕성해지는 모양이다. 고구려고분벽화부터 이어온 초록과 빨강의 보색대비가 화면에 선명한 작품이 가장 김종학 답다. 두 색의 대비는 김종학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에서 얻은 결과일 게다. 김종학이 1979년부터 정착하여 작업한 설악산 자연이 가진 색채감각을 생래적으로 받아들여 표현한 것이다. 앞선 김환기나 이대원보다 한층 에너지가 충일하고, 전통적인 색채감도 잘 소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김종학의 필법은 이대원의 서예붓 리듬과도 다르다. 유화보다 수성안료로 빠르게 마르는 아크릴릭 물감을 즐겨 써왔다. 즉흥적인 붓터치는 한쪽으로 쏠리거나 흐름을 갖지 않는다. 캔버스에 붓끝의 물감을 뭉개며 짓이겨 덧칠했다. 그냥 물감 튜브를 캔버스에 직접 짜서 필요에 따라 손이나 붓으로 문지르고 바르며 원색조의 두터운 질료감도 살려내기도 했다.


1970년대 말 설악산에 정착한 이후 김종학은 설악산에서 배운 구상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첨단의 모던추상화가에서 엄청난 변화이다. 설악에 들어서자마자 봄에 할미꽃이 핀 자연을 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그동안 왜 안 그렸는지 자기반성을 했다고 한다.(참고도판 15) 그리고 산기슭과 개울가, 숲과 풀섶, 꽃과 새, 풀벌레를 그렸다. 꽃이 만발한 봄 풍경이나 동해바다 풍경, 그리고 황갈색 마른 숲이나 풀섶의 가을 정경 등 단일 색조의 설악산 그림들은 김종학의 진면목이다. 


1980년대부터 전반적으로 화면을 단순화하면서 색채의 질감을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민화풍을 패러디하기도 하며, 전통적인 것에서 자기 형식을 찾았다. 단원 김홍도의 매화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성적인 봄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했다. 아주 분방하게 자연에서 혹은 전통미술에서 자신의 회화적 격식을 찾았다. 설악산의 산수풍경도 그렸고, 토왕성폭포를 박연폭포처럼 재구성하기도 했다. 겨울 설악풍경에 해 뜨는 모습도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과 유사한 이미지이다. 겨울 설악의 설경은 김정희의 세한도에 비유할 정도로 애정을 쏟아 그렸다.(참고도판 16) 이들 가운데 설악산에서 본 바다모습이 김종학의 마지막 행로이지 않을까 싶다.

2001년작 <설악산 풍경>은 연녹색 바탕에 붉은색 꽃들이 만발한, 전통적 보색대비가 연출되어 있다.(도 9) 여기에 흰꽃, 노란꽃, 주황꽃, 파란꽃 등 백화만발은 김종학다운 구성이자 여름 기운이 생동하는 작품이다. 호랑나비, 새, 거미, 송충이, 풍뎅이, 청개구리 등은 꽃과 더불어 숨은 그림처럼 다채롭다.


2003년작 <풍경>은 붉은 태양 아래 다양한 물가 꽃들이 화사한 작품이다.(도 10) 흰 바탕 캔버스에 맑고 투명한 색채감이 싱그럽다. 짙은 빨간색의 태양과 여섯 송이 꽃이 화면에 안정감을 주는 악센트 구실이 눈길을 끈다. 물가엔 두 마리 오리가, 꽃들엔 호랑나비와 실잠자리와 벌들이, 태양의 반대편엔 거미줄을 친 거미가 보인다. 이들은 <풍경> 그림을 가까이 다가가 읽게 해주는 작은 매력 덩어리들이다.


2002년작 <설악산 풍경>은 설악산 화실 입구에 있는 속초바다로 흐르는 너른 개천을 포착한 그림이다.(도 11) 짙푸른 물가에 생강나무 노란 꽃을 비롯해서, 빨간색, 흰색 등 작은 봄꽃들이 어울린 득의작이다. 얼음이 녹은 물로 개천이 짙푸르고 물고기 떼들이 물길 따라 상류로 유영한다. 물길과 꽃들이 교차하는 사선구도로 물길의 속도감이 어지럽게 할 정도이다. 물총새 두 마리는 먹거리에 신나 있는 듯하다. 한 마리는 물고기를 입에 물고 한 마리는 물 위를 날며 먹잇감을 찾는다. 김종학 회화예술을 빼놓을 수 없는 일화거리이다.


이러한 김종학 회화의 격렬한 필치는 1988년작 <설악의 가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도 12) 삼각형 구도에 거침없는 붓질의 분방함과 색채의 화려함이 어울린 설악의 가을 전경이다. 특히 우리색 보색대비가 연출되어 있다. 단풍에 물든 바위산과 흰 구름 표현은 덧칠한 선이나 채색 붓질은 괘념치 않은, 설악풍경그림 초기의 선맛 그대로이다. 그리고 설악의 가을로부터 김종학다운 색감이 분출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나는 김종학 회화의 이러한 색채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김종학은 분명 우리시대의 빼어난 채색화가이다. …… 현란한 색감과 색채배합에 김종학 회화예술의 개성미가 넘친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갈색 등 짙고 안정된 원색조의 색채 활용은 물론이려니와, 특히 여름그림에서 초록색을 바탕으로 삼은 빨강색의 보색대비가 눈길을 끈다. 이런 색채의 배열과 대비는 한국회화사에서 눈에 익은 전통색감과 유사하다. 웅혼한 고구려고분벽화부터 섬려한 고려불화, 조선시대 불화와 단청장식, 조선후기 궁중화나 민화, 김종학 컬렉션에 포함된 자수나 섬유류의 민속공예에 이르기까지 1600년 이상 지속해온 민족적 색채감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화려한 색채 정서를 즐긴 한(韓) 민족의 후예라 할 수 있다. 김종학이 감성적으로 쏟아낸 채색화에 대한 대중적 인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어필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민족 고유의 색채정서를 현대에 재창조하고 발현(發現)해 놓았다는 점만으로도, 김종학의 회화가 우리시대에 남긴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마치며

황홀하게 현란하다. 전시장은 배병우가 창덕궁을 촬영한 사진작품으로 시작된다. 배병우의 사진예술을 탐닉하며 그의 눈을 따라 한국의 청아한 자연색과 단청색을 감상할 수 있다. 고구려고분벽화부터 계승된 전통색의 미려함은 한광석의 천연염색 작품으로 펼쳐 보인다. 그리고 한국의 자연과 전통색을 토대로 삼은 김환기ㆍ이대원ㆍ김종학 회화의 감명 깊은 색채미로 마무리했다. 한국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세 화가는 각기 다른 개성으로 한국의 색채미를 찾은 거장들이다. 이렇게 다섯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니, 전시장은 한국 색의 진수로 가득하다.

김환기는 고향 신안 기좌도(현 안좌도)의 바다와 하늘을 추억하며 블루 색감과 다채로운 색면 조합을 완성했다. 김환기가 그리움으로 화면을 채웠다면, 이대원과 김종학은 대지와 호흡하며 그 생생한 자연을 그렸다. 이대원은 고향 파주에 농원을 가꾸며, 김종학은 설악산에 정착해서, 변화하는 자연에서 물리를 텄고 각각 개성적 한국의 색을 구현했다. 세 작가가 지닌 공통점은 조선시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통해 각자의 개성적인 회화세계를 완성했다는 점일 게다. 다시 말해서 서양물감이나 재료를 쓰고 인상파ㆍ표현파ㆍ추상주의 등 서양의 모던화법을 구사하였지만, 예술정신 내지 회화적 지향점은 철저하게 한국미에 두었다. 

김환기는 특히 달항아리를 사랑했고, 조선시대 백자 수집으로 작업실 공간을 채웠다. 이대원은 조선시대 생활 공예품과 농기구들을 좋아했다. 김환기와 이대원이 수집한 골동은 단순하고 질박한 눈맛을 지닌 것들이 많다. 김종학이 모은 조선시대 목기와 민속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별도의 기증실이 있을 만큼 명품들이다. 세 작가는 이처럼 한국인의 감성에 흐르는 조형미와 색채감각을 일깨워주기에, 한국현대회화사의 단단한 위치를 점유한다.

배병우는 세 거장 못지않게 행복한 작가이다. 그 자신이 한국의 강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찍을 게 무진장하며, 창덕궁의 계절색 촬영도 뚝심스레 지속한다고 한다. 한국의 자연색, 그 풍성함이 배병우의 뷰파인더를 통해 어떻게 새로이 재해석될까 기대된다. 조선의 전통색을 재현한 한광석 역시 행복한 작가이다. 한광석은 농사를 짓고 난 뒤 가을 염색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의 네 작가와 달리 한광석은 저 농사짓는 농부들과 고스란히 닮아 있다. 농사지어봐야 별 소득이 없이 손해 보는 현실과 같다. 그럼 농사를 안 지어야 하는데, 때가 되면 또 짓는다. 그게 이 땅을 일구며 살아온 농부의 마음일 게다. 한광석의 마음자리도 다르지 않다. 우리네 주변사람들은 올해도 단풍구경을 열심히 다녀왔다. 그런데, 막상 그 색채 예술을 생활 속에서 즐기거나 사주는 사람이 너무 적은 게,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광석은 30년을 반복해서 물을 들여왔다. 그런 농부를 닮은 심정으로 앞으로도, 칼라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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